‘섹시’ 열풍, 성해방인가 성차별의 또 다른 얼굴인가?

2009년에 쓴 글입니다(상임연구원 정진희)

 

오늘날 우리는 성적 이미지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S라인이니 섹시 퀸이니 환상의 누드니 하는 섹시 타령이 TV, 신문, 잡지, 인터넷 등 거의 모든 대중매체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술, 무용, 뮤지컬 등 문화 예술에서도 ‘섹시 코드’가 유행이다.

지하철을 타러 가면 우리는 이효리가 짧은 상의와 팬츠를 입고 허리를 희한하게 꺾고 있는 광고판을 보게 된다.

여성 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는 미의 추구가 아니라 억압일 뿐이다.

 

성 상품화가 최근의 현상은 아니다. 성매매나 포르노 등 상업화된 성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특히 지난 20여 년 동안 성의 상업화가 빠르게 진전됐다. 성매매 같은 전통적 형태의 상업적 성이 계속 번성할 뿐 아니라 주류 문화 자체가 포르노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몇 년 새 인기 여성 연예인들이 앞 다퉈 누드 화보집을 냈는데, 10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에로 배우’나 하는 일로 여겨졌다.

여성의 육체적 매력은 단지 ‘외모가 근사하다’라는 수준을 넘어 부와 인생의 성공까지 나타내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플레이모델 출신 이파니는 방송인으로 활동 영역을 확대했고 최근 가수로도 활동중이다. 곧 헐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20대의 나이에 ‘섹시한 몸’ 하나로 성공을 거머쥔 듯한 이파니는 젊은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섹시하다’는 것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의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비쳐진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한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여성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자유와 해방?

그러나 이러한 섹시 열풍이 정말 여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뜻할까?

지난 20여 년 동안 성에 대한 사회의 태도가 한층 개방되고 자유로워지면서 여성들이 성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는 데서 더 많은 자유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1960년대만 해도 여성들은 단속 때문에 미니스커트도 마음대로 못 입었다. 혼전 성관계는 허용되지 않았고 피임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여성들은 아이를 평균 6명씩 낳았고 이혼 여성은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분위기였다. 교육을 받거나 직업이 있는 여성들은 드물었다.

오늘날 여성들의 삶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많은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게 됐고 직장에 다니게 됐다. 피임도 대중화해 여성이 평생 동안 낳는 아이 수는 평균 1명밖에 되지 않는다. 혼전 성관계에 대한 터부는 크게 약해졌고 결혼은 감소하고 이혼이 늘어났다. 동거나 독신도 늘어났다.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누리는 성적 자유는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에 비해서 훨씬 확대됐다. 사실 일부 여성들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성공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성 개방과 자유화가 해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 20여 년은 여성들이 자신을 옥죄는 고정관념에 더욱 사로잡히게 된 기간이기도 하다.

성이 인간의 속성에서 분리돼 물건처럼 사고팔리면서 성관계와 성애에 대한 인식이 왜곡됐다. 섹스는 사랑이나 따뜻함, 친밀함과는 무관한 단순한 정욕의 분출로만 여겨진다. 여성들을 눈요깃거리로 보는 풍조도 팽배해졌다. 이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해 한다.

‘섹시함’은 오늘날 여성들에게 일종의 강박관념이 되고 있다.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 여성들이 가슴 확대 수술을 받는 게 유행이고, 골반·배꼽·종아리 수술 등 온갖 성형 수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2004년 보건복지부는 여대생 중 절반이 성형수술을 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성형수술 열풍은 청소년들에게도 확산되고 있고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뛰어들고 있다.

그뿐 아니다. 오늘날은 나이든 여성들도 섹시해야 한다는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이 들어도 탄력 있는 몸매를 유지하는 여성 연예인들을 찬양하는 기사들이 언론에 넘쳐난다. ‘비키니 입은 황신혜는 47살인데도 20대처럼 보인다’, ‘육감적인 몸매의 김혜수와 청순미·섹시미를 동시에 지닌 전도연이 40이 다 돼 가는 나이’라는 둥 난리다.

성형수술이 여성의 건강과 생명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런 위험을 무시하고 수술대에 오르는 여성들이 허다하다.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다 거식증에 걸리고 사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일들은 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나 ‘여성들의 허영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 때문이다. 패션 산업, 식품 산업, 제약회사, 병원, 화장품 회사, 헬스 기기 판매 회사, TV, 인터넷방송, 신문·잡지사 등 온갖 기업들이 여성들에게 날씬하고 ‘섹시한’ 몸을 갖도록 끊임없이 부추긴다.

장시간 근무, 과도한 육아와 학업 부담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운동할 시간을 빼앗긴 채 온갖 화학첨가물을 범벅한 패스트푸드를 먹고, 이렇게 해서 살찐 여성들은 다시 다이어트 산업의 먹잇감이 된다.

여성들이 황신혜, 이효리, 원더걸스, 소녀시대를 닮기 위해 다이어트 약을 사고 헬스클럽에 가고 수술대에 오르는 동안 기업들의 이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다이어트와 화장품 산업 매출액이 최소 10조 원이라 한다.

성형이나 다이어트는 흔히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일로 여겨진다. 최근 케이블 TV에서 방영중인 ‘다이어트 War 시즌 3’의 메시지도 이것이다. ‘뚱뚱한’ 여성들이 합숙훈련을 하면서 살 빼는 과정을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 형식으로 보여 주는 이 프로그램은 다이어트를 마치 마법인양 다룬다.

참가자 중에는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였다가 이혼 충격으로 20kg이나 늘어난 이하얀이 있었고, 청소년기에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상처받으면서 몸무게가 엄청나게 불어난 여성도 있었다. 방송은 다이어트가 ‘자기 치유 과정’이라고 말했고, 참가자들은 다이어트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자는 각오를 다졌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여성을 몸무게와 사이즈로 평가하는 사회에서 ‘뚱뚱한’ 여성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 수 있다.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사람들이 ‘뚱뚱한’ 여성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이어트는 마치 그들의 자신감을 높여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그 어려운 다이어트에 성공한다고 해서 삶의 모든 고통이 해소될 수 있을까? 날씬해진다고 해서 일자리가 없어 반지하를 전전하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하루 종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삶의 현실이 바뀔 수 있을까? 또, 이상적 몸매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도 끝날까?

다이어트나 성형수술로 여성의 변신을 도와주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방송중이다. 하지만 남성 임금의 60퍼센트 조금 넘는 월급을 받고, 승진에서는 번번이 밀려 맨날 하위직에 머물고,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부모와 친척들에게 사정하러 다니고, 해고자가 된 남편과 치솟는 대학 등록금 걱정에 파출부로 일해야 하는 보통의 노동계급 여성들이 과연 다이어트나 성형을 통해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을까?

이런 프로그램들은 케케묵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재탕삼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게 있다면, 이제 여성의 성공을 돕는 존재는 왕자가 아니라 트레이너와 의사라는 것뿐이다.

 

저항

우리는 여성 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에 반대해야 한다. 미스코리아 대회나 수퍼모델 대회에 나오는 여성의 외모는 평범한 사람들의 외모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사실 영화배우나 탤런트, 모델 등에서 발견되는 ‘명품몸매’는 대개 값비싼 개인 트레이너, 성형외과 의사, 미용실의 도움으로 탄생한다. 이토록 비현실적인 몸매를 여성들에게 모델로 제시하는 것은 미의 추구가 아니라 억압이다.

단순히 성형이나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이 해결책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자는 소박한 생각으로는 광범하고 거센 성 상품화 물결을 헤쳐갈 수 없다. 문제는 자긍심 없는 여성 개인이 아니라 몸무게와 사이즈로 여성을 평가하는 여성 차별적인 사회에 있다.

그동안 여성운동은 성 상품화와 여성 몸에 대한 왜곡, 그리고 성적 억압에 항의해 왔다. 1980년대 말에 미스코리아 폐지 운동이 일어났고, 1990년대에는 성폭력과 성희롱에 반대하는 투쟁이 일어났다. 여성의 외모를 채용 심사에 반영하는 기업의 고용 관행에 반대하는 투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성폭력, 성희롱이 법으로 금지된 지 각각 15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성폭력과 성희롱은 끔찍이도 자주 일어난다. 운동의 성과로 미스코리아 대회가 공중파 방송에서 사라졌지만 미스코리아 대회를 포함해 1백 개가 넘는 미인대회가 여전히 해마다 열린다. 성 상품화와 여성 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는 도리어 강화됐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여성 차별의 근원, 즉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양육과 노인, 환자 돌보기 같은 일을 개별 가정에 떠넘김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보기 때문에 여성 차별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성 해방이 단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만을 뜻할 수는 없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말하듯, 여자도 남자를 섹스 파트너로만 여기고 많은 사람과 섹스를 즐기는 게 성 해방은 아닌 것이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인간의 성애와 성 간의 관계에 대한 모든 편견과 차별을 타파하는 것이 진정한 성 해방이다.

오늘날의 상황은 모순적이다. 성이 노골적인 상품인 동시에 성적 보수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섹스 얘기가 폭발하고 있지만, 성은 여전히 공개적인 자리에서 솔직하게 토론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성 해방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동안 사회를 뿌리에서부터 흔드는 거대한 변혁운동이 일어나면 경제와 정치뿐 아니라 사람들의 관념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성의 자유와 여성 해방은 이러한 운동들에서 거듭 부상한 요구였다.

여성들은 위대한 운동에서 늘 중요한 구실을 해 왔다. 지난해 촛불운동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성들의 눈부신 활약에 주목했다. 최근 파업에서도 여성들은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언론노조 파업에서 그랬고, 무엇보다 쌍용차 공장점거 투쟁에서 가족대책위의 용감한 투쟁을 보라.

이러한 힘은 성 상품화와 여성 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에 도전하는 운동을 건설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노동계급이 체제를 뒤흔드는 저항을 할 때 우리는 사회의 생산방식과 사람들의 생활방식까지 바꾸는 총체적인 변혁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레프트21> 11호(2009.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