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스와 여성 차별의 기원 다시 보기

2015년 말에 쓴 “엥겔스와 여성 차별의 기원 다시 보기”입니다.
– 상임연구원 정진희

최근 몇 년 동안 여성 차별을 해명하고자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찾는 저술가들이 부활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마사 기메네즈와 리즈 보겔, 이탈리아 페미니스트 실비아 페데리치, 캐나다 페미니스트 헤더 브라운 같은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을 여성과 가족 연구에 적용한다. 마르크스주의로는 여성 차별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견해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흔한데, 여성 차별을 유물론적으로 접근하는 시도가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기메네즈와 보겔, 페데리치는 마르크스의 방법은 유용하지만 마르크스 자신은 여성 차별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달리, 브라운은 마르크스가 비록 여성 차별 문제에 관해 체계적 분석을 발전시키지는 않았지만 초기부터 여성 차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본다.

브라운은 2012년에 발간된 《마르크스의 젠더와 가족》에서 마르크스가 특별히 남성과 여성의 구실과 가족에 관해 쓴 것을 모두 살펴보면서 이를 입증한다. 여성 해방에 관한 마르크스의 관심은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는데, 이 책은 여성 차별에 관한 마르크스의 저술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여성 해방이 마르크스주의에서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브라운은 가족과 여성 차별에 대한 핵심적인 마르크스주의 고전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하 《기원》)의 중요성을 무시한다. 기메네즈, 보겔, 페데리치도 이 점에서 비슷하다.

경제결정론?

브라운은 마르크스에 비해 엥겔스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엥겔스가 억압을 단지 ‘경제적 요인’으로만 이해해 경제결정론과 환원론에 빠진 반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더 변증법적이어서 더 많은 갈등과 다양성을 허용하며 억압을 정교하게 설명한다고 본다.

이 주장의 원조는 미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 라야 두나예프스카야다. 두나예프스카야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스탈린주의와 단절한 공산주의자 세대에 속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생산력 발전이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사회 변혁을 낳는다는 기계적 결정론을 취하며 역사에서 인간들이 수행하는 능동적 구실을 기각했다. 두나예프스카야는 이에 반발해 마르크스의 저작들에 주목하며 다시 해방의 전망을 찾으려 했다.

두나예프스카야는 브라운처럼 마르크스의 “민속학 노트”를 연구하고 1979년에 쓴 글에서 “민속학 노트”를 엥겔스의 《기원》과 비교했다. 그는 마르크스가 인간 행위를 역사의 원동력으로 보는 데 반해 엥겔스는 단지 역사의 “단계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으로 봤다고 주장했다. 두나예프스카야는 마르크스가 갈등, 모순, 선택을 본 데서 엥겔스는 생산력 발전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브라운과 두나예프스카야는 마르크스의 “민속학 노트”가 엥겔스의 《기원》과 달리, 원시 공산주의 내에서 생겨난 전반적 억압과 여성 차별의 요소들을 보여 주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사용한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는 구절을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며 엥겔스의 책은 마르크스의 노트와 많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두나예프스카야가 스탈린주의적 세계관에 반발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엥겔스를 기계적 유물론자로 평가한 것은 온당치 않다. 엥겔스는 생산력 발전과 사회적 관계 사이가 직선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거기에는 항상 투쟁이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모든 것에 똑같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이해하지도 않았다.

정치·법률·철학·종교·문학·예술 등의 발전은 경제 발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상호작용하고 경제적 토대에도 반작용합니다. 경제 상황만이 원인이고 유일하게 능동적인 반면 다른 모든 것은 수동적 결과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경제적 필연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상호작용이 이뤄지는데, 이 경제적 필연성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입니다.1

브라운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주의 선언》(1848)과 엥겔스가 쓴 “공산주의의 원리”(1847)를 대비해 엥겔스를 비판하는 것은 기이하다. “공산주의의 원리”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공산주의 선언》을 쓸 때 기초로 삼은 글이다.

역사유물론과 변증법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청년기 이후 평생에 걸친 긴밀한 협력 속에서 발전시킨 이론이다. 따라서 두나예프스카야와 브라운처럼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분리해 변증법적 마르크스 대 ‘기계적’ 엥겔스로 서술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브라운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대비하는 것은 단지 엥겔스에 대한 이해 문제뿐 아니라 그 자신의 이론적 견해를 강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브라운은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소개할 때 종종 마르크스의 견해가 아닌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해석한다. 이것은 억압과 착취의 관계를 설명할 때 두드러진다. 브라운은 요즘 유행하는 ‘상호교차성’ 개념, 즉 계급을 여성, 인종, 성 같은 요소들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논리로 마르크스의 저작을 해석하곤 한다.

예를 들어, 브라운은 여성의 자살과 이혼 문제를 다룬 마르크스의 기사들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마르크스는 적어도 단정적이지 않았다. 그는 계급과 젠더 어느 하나를 특권화하지 않고 분석하면서 이 둘의 상호의존관계를 논했다.”

브라운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여성과 계급 억압에 관한 통합적 이론을 만드는 데” 엥겔스보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더 유효하다고 본다(그런데 브라운은 계급 문제를 착취가 아닌 억압의 문제로 국한해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계급을 단지 억압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착취적 관계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분명 마르크스는 일찍이 1842년부터 이혼, 가족 같은 문제들에 관한 관심을 보여 주면서 여성 차별을 노동계급이 겪는 착취나 억압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았다(이 점은 엥겔스도 마찬가지다. 《기원》은 부르주아 가정에서 여성들의 열등한 지위, 사회에 만연한 성매매와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 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 차별을 논할 때 마르크스는 분명히 계급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에 바탕을 두었다. 그는 여성 차별, 가족, 종교 분쟁 같은 다양한 쟁점을 계급 사회의 특유한 산물로 이해했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계급 사회에서 근본 대립을 성이 아니라 계급으로 여겼다는 것은 무수한 저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계급 사회에서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계급투쟁이라고 썼고, 노동자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폐지해야만 착취와 억압 모두를 끝장낼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활동에 헌신했다.

브라운은 마르크스의 방법을 이용해 여성 차별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면서도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인 노동계급의 혁명과 계급투쟁 사상을 여성 해방에 적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브라운이 옛 소련과 동유럽, 중국 같은 나라들을 모종의 사회주의 사회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스탈린주의 체제를 ‘사회주의’로 여긴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그 사회에서 지속되는 여성 차별을 보며 흔히 계급 사회 폐지와 여성 해방은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많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급진 페미니즘에서 유래한 가부장제 개념을 수용해 이중체계 이론(착취와 억압을 분리해 별도의 동학을 갖는 것으로 설명했다)을 내놓았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체제는 결코 계급이 사라진 사회가 아니었고, 러시아를 제외하자면 다른 나라들은 노동자 혁명조차 일어난 적 없었던 사회였다.(중국에서는 1949년 민족 해방 혁명이 일어나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수립됐다.) 스탈린주의 체제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분석한 국제사회주의 전통에서는 스탈린주의 체제에서 자행된 가혹한 착취와 억압(여성 차별뿐 아니라 제국주의적 억압 등 온갖 억압)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브라운은 가부장제의 정의를 결코 밝히지 않은 채 자본주의에서 가부장제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엥겔스와 달리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형태의 가부장제를 이해했을 것이라고 근거 없이 추측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봉건제의 농민 가족 등과 같이 전 자본주의 시대의 가족을 묘사할 때 가부장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등장하면 자본 축적 동학 때문에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제도들과 기존 사회관계가 고스란히 유지될 수 없고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는 자본 축적에서 노동력 재생산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의 동학에 재생산이 종속된다고 여겼다.

물론 마르크스는 노동계급 남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여성 차별 의식을 알고 있었고 이에 도전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노동계급 가족을 가부장적 가족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충격으로 노동계급 가족이 사실상 해체 상태에 놓인 것을 보았고, 장차 노동계급 가족이 사라질 것이라고 봤다(물론 잘못된 예측이었지만, 당시 현실을 반영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속되는 데서 노동력 재생산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의미 있는 통찰들을 남겼지만 생산과 노동력 재생산 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마르크스가 남긴 통찰들을 이용해 자본주의에서 여성 차별을 이론화하려는 브라운의 시도는 흥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 준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착취와 억압을 동일한 비중으로 중시했다고 간주하며 엥겔스와 차별화하는 것은 여러 모로 불합리한 추론이고, 유물론적 여성 차별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서 장애물이 되기 쉽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기원》은 계급과 국가, 그리고 여성 차별의 기원을 밝힌 책으로 엥겔스가 마르크스 사망 1년 뒤인 1884년에 썼다. 엥겔스는 자신의 노트뿐 아니라 마르크스의 “민속학 노트”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북미 원주민 부족인 이로쿼이족을 연구한 미국 인류학자 루이스 헨리 모건의 선구적 연구 《고대 사회》를 높이 평가하며 모건의 통찰을 자신들의 역사 발전 이론에 통합하려 했다. 이로쿼이 족의 친족 체계를 다룬 모건의 연구는 초기 인간 사회의 발전을 유물론적으로 설명한 획기적 저술이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통찰력에 바탕을 두고 모건의 작업을 계급 사회의 등장이 어떻게 가족제도와 그에 따른 여성 차별을 낳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주류 학계는 오랫동안 모건의 저작을 무시했고, 마찬가지로 엥겔스의 저작도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인류학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시대에 새로운 과학이었는데, 다윈의 《종의 기원》은 1859년에야 출판됐고 초기 인류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됐다. 모건의 연구는 그 뒤 발전한 인류학 연구에서 여러 오류가 지적됐다.

그러나 주류 학계가 모건과 엥겔스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사실적 오류보다는 그들이 사용한 유물론적 방법에 담긴 혁명적 함축 때문이었다. 계급과 착취, 억압이 없는 ‘원시 공산주의’가 존재했다는 생각은 한낱 동화에 불과한 얘기로 취급됐다. 그런데 브라운 역시 엥겔스가 계급 이전 사회를 이상화했다며 ‘원시 공산주의’가 존재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그러나 인류학과 고고학 분야에서 이뤄진 많은 연구들은 착취와 체계적 차별이 없는 사회들이 존재했음을 보여 준다. 초기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채취나 수렵을 하며 살아갔는데, 이 수렵-채집 사회는 불과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 곳곳에 남아 있었고 지금도 소수가 존재한다. 이 사회들을 연구한 인류학자 리처드 리는 자신의 발견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국가가 출현해 사회적 불평등이 고착되기 전 수만 년 동안 인간은 혈족에 기반한 소규모 사회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이 집단의 경제 생활 제도는 토지와 자원의 집단 또는 공동 소유, 식료품 분배에서 일반화된 호혜주의, 비교적 평등주의적인 정치 관계를 핵심으로 하고 있었다.

캐나다의 수렵-채집 사회를 연구한 인류학자 엘리너 리콕도 비슷한 발견을 했다.

토지의 사적 소유도 없었고, 성별 분업을 제외하면 노동 분업도 없었다. … 사람들은 자기들이 맡고 있는 활동에 관해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집단적 활동은 무엇이건 합의를 통해 결정됐다.

엥겔스는 《기원》에서 계급 발생 전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았고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 대립은 단혼에서 남녀 대립이 발전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고, 최초의 계급 억압은 남성의 여성 차별과 동시에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기원》에서 엥겔스는 인간 사회의 폭넓은 발전을 묘사하기 위해 “야만”, “미개”, “문명” 같은 모건의 개념을 사용했다. ‘야만’은 수렵-채집 사회를 뜻하고, ‘미개’는 원예농업에 기반을 둔 초기 농업 사회를 뜻하고, ‘문명’은 계급 사회를 뜻한다. 엥겔스는 각각의 발전 단계에 해당하는 결혼 형태를 발견했다. 즉, 수렵-채집자들의 군혼, 원예 사회의 대우혼(두 사람이 짝을 이루지만 언제라도 한편에 의해 해소될 수 있는 관계), 계급 사회의 일부일처제(어머니가 중심인 오랜 친족 구조에서 아버지가 아내와 아이들을 지배하는 가족으로 바뀐 것이 특징인)이다.

계급 사회가 등장하면서 남성이 지배하는 새로운 가족이 구래의 친족 관계를 대체하고 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억압이 나타났다고 본 것은 분명히 옳았다. 엘리너 리콕, 리처드 리 등 여러 인류학자들이 수집한 증거를 보면, 17~19세기에 유럽 이주민이 만난 수렵-채집 집단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일이 없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성별 노동 분업은 있었다. 남성은 주로 수렵을 맡았고 여성은 주로 채집을 맡았다. 그러나 이런 분업이 꼭 여성의 열등한 지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당시 사회의 생산력 발전 수준에서 채집은 수렵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공급했다. 여성의 채집 활동으로 공동체 식량의 절반 이상이 공급됐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는 높았다. 여성은 공동체에 필요한 사항들을 남성과 공동으로 결정하고 실행했다.

한 예로,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은 상당수가 주로 여성들이 채집해 온 과일과 채소에 의존하는 반면에 남성들이 공급하는 육류는 단지 사치품에 불과했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이런 쿵족 사회가 아주 평등하다고 지적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들은 가족 단위로 살지 않았고, 사람들은 친족 공동체 체계에서 살았고 양육은 공동체 모두가 책임졌다. 부부 단위도 느슨하게 조직됐다. 배우자가 떠나도 자신이나 자녀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가치관은 자본주의에서 통용되는 가치관과 매우 달랐다.

자본주의 초기 유럽인들이 수렵-채집 집단을 처음 만났을 때 있었던 일이 한 예다. 1630년대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들은 캐나다 동부의 나스카피족을 방문하면서 거주지와 작업 일정을 결정하는 데서 여성들이 행사하는 커다란 영향력과 성적 자유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선교사는 한 나스카피족 남성에게 “프랑스에서는 여자가 자기 남편을 지배하지 않는다”며 누가 자기 아들인지 확실히 모르는 것은 “죄악”이라고 꾸짖었다. 그러나 그 나스카피족 남성은 “당신 얘기는 잘못됐다. 당신네 프랑스인들은 자기 자식만을 사랑하지만 우리는 부족의 모든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대꾸했다.

몇 가지 오류와 한계

여성 차별을 인류 사회의 보편적 특징이 아니라 계급 분화와 국가의 등장과 함께 발전한 것으로 본 엥겔스의 주장은 옳았다. 그러나 부차적 문제에서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엥겔스 자신이 이 점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기원》은 비판적으로 읽지 않으면 오해하기 쉬운 책이다.

우선, 엥겔스는 대다수 수렵-채취 사회에서 혈족이 하는 구실을 매우 과장했다. 모건은 혈통에 기반한 사회들에 있는 친척 분류를 그 이전의 상당히 다른 사회 조직 형태에 적용했는데, 엥겔스는 이 견해를 따랐다. 엥겔스는 이 친척 분류가 형제들이 자매들과 결혼하는 “군혼” 단계를 입증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군혼이 “야만의 특징”인 반면, 대우혼은 “미개의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군혼은 물론 강력한 혈족도 수렵-채집 사회(“야만”)의 특징이 아니다. 이 사회는 부부와 그 자녀들이 느슨하게 무리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또 엥겔스는 군혼 이전에 “무규율적 성교”의 시기가 있었다고 추정했는데, 별 근거 없는 추측이었다.

또 다른 쟁점은 엥겔스가 사용한 ‘모권제’라는 용어와 관련된 것으로, 엥겔스 자신이 실제로 범한 게 아니라 종종 엥겔스의 옹호자들과 반대자 모두가 엥겔스의 잘못으로 돌리는 문제다. ‘모권제’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람들은 계급 지배와 국가 비슷한 게 항상 존재했고 한때 사회는 남성이 아닌 여성의 지도 아래 있었다고 가정했다. 엥겔스는 이런 생각을 거부했고 ‘모권’을 이런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후손이 모계를 따르는 것을 가리켜 독일의 저술가 바호펜이 사용한 ‘모권’이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엥겔스는 이런 의미에서 ‘모권’이 어떤 단계에서는 보편적이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간결함 때문에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하지만, 아직 이 사회 단계에서는 법적 의미의 권리에 대해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옳은 표현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착취와 체계적 차별이 없는 사회에 대한 증거는 상당히 많지만 브라운은 개별 가족과 여성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엥겔스의 명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브라운과 두나예프스카야처럼 마르크스가 특정 구절을 썼냐 마냐가 중요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사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시대에는 수렵-채집 사회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수렵-채집 사회들에 관한 자료를 이용할 수 없었다. 모건의 저작은 초기 농업 사회인 원예 사회들에 관한 자료들이었고, 그래서 엥겔스는 수렵-채집 사회에 관해 추측해야 했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진화에서 평등주의적 국면을 설정한 것은 옳았다. 게다가 엥겔스는 변증법적 사상가로서 생산력의 작은 변화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원예 사회의 씨족 공동체의 평등한 관계를 허물어뜨려 계급들이 등장할 것임을 이해했다.

인류학과 고고학이 발전하면서 오늘날에는 계급 분화 이전 사회들에 대해 엥겔스의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사실들이 알려져 있다. 계급 사회가 형성된 과정은 엥겔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불균등하고 복잡했다. 고고학 연구들을 보면, 농업이 시작된 이후 수천 년 동안 계급이나 국가와 비슷한 것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남성 우월주의가 있었다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엥겔스는 계급 발생과 사유재산이 동시에 발생했다고 설명했지만, 이것이 일반적 추세는 아니었다. 어떤 계급 사회에서는 계급 발생 한참 뒤에야 사유재산이 형성됐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중국, 인도, 메소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문명 초기 역사에서 지배계급은 사유재산 없이 피지배계급을 집단적으로 착취했다.

계급 사회의 등장은 생산력이 발전한 결과다.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전체 사회를 겨우 먹여 살릴 수 있는 양 이상의 잉여가 발생하자 평등한 공동체의 사회관계에 변화가 생겨났다. 이 잉여생산물을 통제하게 된 사람들이 장기간의 역사 발전 속에서 결국 최초의 지배계급이 됐다

그런데 엥겔스는 계급 사회의 등장과 여성의 지위 하락(“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을 옳게 관련짓지만, 이런 여성의 “패배”를 초래한 기제가 무엇인지는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즉, 새로운 계급 사회에서 지배자들이 하필이면 왜 남성이 됐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이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를 했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이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와 인류학자 어니스틴 프리들이 제시한 설명2을 받아들여 계급 사회에서 남성이 지배계급이 되고 남성이 지배하는 가족이 생겨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수렵-채취 사회에서 중요한 식량 조달 수단이었던 채취는 아이를 기르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괭이에 의존한 초기 농경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무거운 쟁기를 사용하고 소와 말을 기르는 사회에서는 더는 그럴 수 없었다. 여성이 그런 일을 했던 사회는 출산율이 낮았고 인구가 증가하지 않았다. 이 사회는 여성을 그런 업무에서 배제하는 다른 사회에 밀려났다. 농업에서 일어난 변화뿐 아니라 장거리 무역의 발전과 빈번해진 전쟁도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런 일들은 남성이 주로 수행했기에 여성은 가장 많은 잉여를 창출하고 사회적 위신을 높이는 분야에서 제외됐다. 결국 최초의 지배계급은 남성들이 됐다(그러나 모든 남성이 지배계급이 된 것은 아니었고 오직 소수의 남성만이 지배계급이 됐다). 그리고 계급과 국가가 발전하면서 부계제(자손이 부계를 따르며 복잡한 친족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가 남성 연장자가 가구를 지배하는 가부장제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결론

브라운이 인류 역사의 초기 국면에 관한 엥겔스의 설명을 이상적 묘사라며 거부한다면, 기메네즈는 먼 과거에서 억압의 기원을 찾는 것은 비마르크스주의적이라며 역사가 아니라 구조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 차별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사변적 시도가 아니라 여성 해방을 위한 이론과 실천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여성 차별을 보수적 인간 본성론이나 관념론에 기대 남성의 심리나 욕망에서 비롯한 것으로 설명하지 않으려면 여성 차별이 인류 역사에서 늘 존재했는지, 그렇지 않다면 여성 차별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밝히는 것은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다. 엥겔스의 《기원》에 몇몇 약점이 있지만, 이 책은 여성 차별을 유물론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단지 먼 과거에 일어난 여성 차별의 뿌리를 밝히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여성 해방을 위한 투쟁의 전망을 밝히며 전략을 제시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착취와 여성 차별이 모종의 인간 본성이 아니라 계급 사회의 등장에 물질적 뿌리가 있다는 유물론적 분석은 계급 사회가 철폐된다면, 착취와 함께 여성 차별도 끝장낼 수 있음을 나타낸다.

물론 엥겔스의 이 책은 자본주의에서 여성 차별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지 않으므로, 자본주의에서 여성 차별이 일어나는 방식이나 자본주의적 착취와 억압이 맺는 관계를 이 책을 통해 파악할 수는 없다(이 책의 목적도 아니다). 엥겔스는 숨막히는 위선과 보수적 성 도덕이 지배하고 여성이 가정의 부속품으로 여겨지던 19세기 사회에 살면서 여성과 남성의 진정한 평등을 옹호하며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려 했다.3

엥겔스는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일부일처제를 비판하며, 사회주의에서는 진정한 일부일처제가 실현될 것이라고 봤다. 엥겔스가 진정한 일부일처제가 이상적인 형태라고 본 것은 놀랍지만, 이것은 자신의 견해이자 순전한 추측이었을 뿐 자기 이론의 필연적 결론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엥겔스의 진정한 요점은 다음의 유명한 단락에 담겨 있다.

앞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을 지양한 뒤 자리 잡을 양성 관계의 형태에 대해 우리가 지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주로 부정적인 측면들, 대부분 소멸하게 될 것들이다. 그러나 새로 나타나게 될 것은 어떤 것들인가? 그것은 남녀의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서, 남자는 일생을 두고 금전이나 기타 사회적 권력 수단으로 여자를 사는 일이 없고, 여자는 진정한 사랑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동기로도 결코 남자에게 몸을 맡기지 않으며, 경제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몸을 거부하지 않을 때 확정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출현할 때면 지금 의무로 간주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그들은 조금도 애태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알 것이며, 또 이에 따라서 각자의 행동에 관한 여론을 스스로 조성할 것이다. 오직 그것뿐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관계와 개인들의 성적 관계가 어떤 형태를 취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형태가 다양할 것은 분명하며(이미 지금도 다양하다),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생산하고 경쟁이 아니라 협력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서로 존중하며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를 만들려면 자본주의 같은 계급 사회가 인간 본성의 산물이고 착취와 억압이 영원하다는 관념에 도전해야 한다. 《기원》은 이에 필수적인 무기 중 하나다.

참고문헌

크리스 하먼, “토대와 상부구조”, 《자본주의 국가 — 마르크스주의의 관점》, 책갈피, 2015.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책갈피,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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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1 1894년 1월 25일 슈타르켄부르크에게 보낸 편지. [본문으로]
2 차일드와 프리들은 생산에서 여성이 수행한 구실과 역사 발전의 서로 다른 지점에서 생물학이 끼친 역할을 강조한다. [본문으로]
3 동성애에 대한 이해는 확실히 낮았지만, 1880년대 초반은 동성애 탐구가 유아기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본문으로]

출처: <노동자 연대> 164호 2015-12-23